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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비금도날씨 - 비금도에서 만난 샴페인과 막걸리 2024 샴맥 아트 페스티벌

by professional-sports 2025.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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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날씨

지난 12 ‘2024 샴맥 예술제’가 비금도와 자운드에서 열렸다. 2023년 여름 프랑스에서 나루바루호 표류 사건을 연구한 에마뉘엘 교수 일행이 비금도를 방문한 지 거의 1년이 되어 갈 무렵이다. 축제를 주관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 개인적으로 참관하는 마음으로 배에 올랐지만… 나르바루호의 난파장, 선원들의 체재한 장소 등을 프랑스 학교 학생들이 대답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현장 안내와 설명을 맡았다. 그리고 이번 페스티벌 이벤트에 참가하는 극단 가도르의 나루바루 호 사건 재현극이나 도약 강강주 공연 등을 보고 싶다. 토요일은 이른 아침에 암대 남강항에서 배에 올랐다.

 

극단적인 거들 친구를 배에서 만났다. 석석과 함께 배를 타고 이도 저도를 돌아다니며 공연도 하고 풍물 강습도 한 시대가 있었다. 오랫동안 라떼가 되었다. 낯선 얼굴의 친구도 많아져 젊어진 석석의 야드극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른 아침에 축제 행사장에 도착하면 ...... 바람이 격렬하게 불고 있었다. 강풍주의보가 발효될 예정이기 때문에 비금면에서는 비금도에 있는 화물트럭, 축제 행사에 온 차량 등을 이용해 거대한 벽을 세웠다.

 

샴맥 아트 페스티벌 회장의 모습. 하루만 하는 행사이지만 바람과 비도 예상되는지 몰라도 무대를 잘 만들었다. 그리고 축제가 문화 공연이 많아, 그래도 한 것 같다.

 

하루 전에 신안에 내려오던 서울의 프랑스학교 하비에르 국제학교 학생들이 비금도에 도착했다. 항구에 내려 미리 대기한 중형 버스로 올랐다. 비금도의 하트비치 숲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대형버스에서는 어렵다.

 

서울프랑스학교와 하비에르국제학교는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을 위한 학교이지만,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함께 다니는 대체학교 같다. 물론 국제학교이기 때문에 한국인 학생들도 가끔 섞여 있었다.

 

난파한 나루바루호 선장과 선원 29명이 식량과 물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마을이 리치우치무라(현내 우치무라무라)였다. 프랑스의 아이들과 부모님, 선생님 등에게 설명했지만… …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른다. 통역이 별로 없고, 하비에르 학교의 한국인 음악 선생님이 수고하셨습니다.

 

프랑스 북부의 루어블 항구를 출항한 495톤 규모의 포경선 나루바루호는 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에서 1년간 포경 활동을 실시했다. , 남태평양의 마리아나 제도를 출항해, 동아시아의 한반도 동해의 바다를 향해 북상했지만, 3월 말 나루바루호는 서해안 고군산군도 연안에 출몰했다는 영광군수의 변호사 보고 이후 4월 초 폭풍을 만나 히금도 앞바다에 좌초한다. 난파한 곳으로 추정되는 비금도 ‘예미포(현 이미 해변)’에 안내판이 설치됐다.

 

예미포에서 본 바다… 먼 칠발도가 늑대로 보인다. 해안 멀리서 배는 난파했을 것이고, 선원들은 작은 배 3척으로 나눠 타고 아래쪽 삼항포(현월포)에 상륙했다. 그런 이유로 비금도 서면의 도요스 양성규가 선원들을 최선을 만나 문답을 나누었지만 말과 문장이 통하지 않았고, 나주 목사 이종현에게 보고해 전라 감사에 그 소식이 알려지게 됐다.

 

비금도로 열린 프랑스와 한국의 예술제는 학생 중심의 문화교류 공연과 샹송, 판소리 공연 프랑스와 조선의 미식 체험 등으로 구성됐다.

 

막걸리와 샴페인의 맛의 대결에서 초반은 샴페인의 압승으로, 후반은 막걸리의 역전승이었다. 비금도 사람들이 이색 샴페인 시음을 위해 긴 줄을 세웠다.

 

프랑스 주류기업 페르노리카 그룹 프리미엄 샴페인 맘이 나와 한국 막걸리 대표 러너 해협 막걸리를 비롯해 스파클링 막걸리 백주 등 양국을 대표하는 술이 선보였다. 하지만 주류 축제가 될까 걱정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분들, 서울의 하비에르 국제학교의 부모회에서 준비한 프랑스의 과자, 치즈 체험 부스나 히가시섬의 빵집, 소금, 신안 개체굴 등을 시식할 수 있는 부스가 있어 시끄러운 일은 없었다.

 

샴막회는 점심 후에 시작되었다. 프랑스 학교 학생들의 안내를 잠시 담당한 책임으로 아이들의 점심을 먹은 후 키니도 여과해 빵 조각 중 일부로 때렸다. 이벤트에 참석했다. 비는 빨리 쏟아지는 흐린 날씨에 바람도 강해지고 있었다.

 

다시 보면 하늘이 정말로 시시한 바뀌었다. 곧바로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에서 축제가 개막하고 있었다.

 

개막의례가 끝나고 프랑스 학생들과 신안 학생들이 합창 공연을 할 무렵 비가 내렸다. 비는 쏟아져 레인코트로 무장했지만… 관계자, 군청, 국수 직원, 그리고 비금도 사람들뿐이었다.

 

그래도 풍음, 비소 속에 들리는 샹송. 비금도에서 듣는 샹송은 색다른 것인지 아닌지 사람들이 무대 근처에 모였다. 한국인인데 프랑스인처럼 샹송을 잘 부를 수 있다니......이상하다. ㅎㅎ

 

하비에르 국제학교 학생들의 소고댄스에서 학생들의 문화공연은 끝났다.

 

나르바르호 선원들과 외설도 사람들의 첫 만남을 재미있게 보여준 장면이다. 비금도의 풍헌 양성규가 선원들을 처음 만나며 말도 글도 통하지 않고 제스처로 그림으로 그려가 겨우 소통한다. 그들은 고래를 잡으러 온 서양인임을..... 그리고 당시 서학(천주교)의 전파를 극도로 엄금한 조선의 정책에 의해 백성은 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어쨌든, 그러한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도 인류애의 발현이나 대명률에 따른 조선은 표류인을 그들의 나라로 송환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다만 가톨릭교도의 확산을 두려워한 이유인지 민들의 사기적인 접촉을 엄격히 처벌했다. 선원을 구출하려고 달려온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영사관의 몬티니 영사와 나주 목사 겸 남평현감 이종현의 만남과 전격적으로 행해진 선원의 귀국 처리, 그리고 만찬까지. 그들의 만찬은 성공했지만, 각각의 마음 속에서는 공포와 불안, 또 다른 대책을 생각해 그 밤의 만찬을 보냈다.

 

갓도르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비가 조금 개로 뛰어오르는 강철주로 축제의 대미를 장식할 때가 왔다. 2005년부터 인연이 된 비료도 사람들과 도약 강강술이다. 오랜만에 보는 공연이며 나중에 축제 참가자, 프랑스 학생, 부모, 교사, 신안군 수,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 등 모두가 손을 잡고 강철주를 했다.

 

악천후에도 하루 시간의 문화 교류였지만 170년 이상 전에 쇠퇴해 나가는 조선의 명운이 정해져 가는 위험한 시대에 표류한 선원을 보편적인 인류 사랑의 정신으로 걱정하고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국가 수준의 송환 시스템은 건재했고, 백성은 공포와 호기심 속에서 기꺼이 음식과 옷을 내줬다. 그런 곳이 섬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해안이었다. 전통시대에 섬과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천대를 받고 소외된 장소, 유형지로서 인식되었지만, 그런 변방에서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파도가 육지에 비해 빨리 유입되어 교류하고 있었다. 그 전통을 다시 한번 깨워준 비금도의 샴막 축제였다. 시작은 아직 어색하고 부족하지만, 조금씩 채워 가고, 섬의 개방성과 상호 호혜의 정신, 평화의 정신을 구현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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